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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일부러 훼이크도 쳤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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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사이트에서 저 얘기를..
by AilinLusse at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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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24제 - 4. 지갑
'지갑'이라는 단어자체는 세계관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핵심적인 의미는 살려두려 노력했습니다;;
단문 24제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인데 주인공 대접도 못받고 있는 하르미엔(...)과, 돈 밝히는 언니 세헨데르 카트치반이 등장합니다.

글을 보시려거든 클릭


복잡한 곡선을 그리는 커다란 창이 뚫린 방안으로 비껴들어와 이리저리 난반사하며 부유하는 사막의 석양과 반질하게 닳은 파이프에서 실처럼 흘러나오는 연기가 나선의 족적을 그리며 서로를 뒤쫓았다. 그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진하게 타오르는 듯한 노을 빛 눈동자와 볕에 그을린 짙은 피부, 그와 반대로 퇴색한 순금처럼 탁하면서도 밝은 빛깔의 머리채, 입었다기보다는 걸친 쪽에 가까운 강렬하고 농후한 색채의 옷,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휘감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눈부신 황금 장신구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휘점처럼 모여 세헨데르 카트치반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요는-”

세헨데르는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를 떼며 감고 있던 눈을 치뜨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르미엔은 무의식중에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 눈과 마주했다.

“제국 놈들 뒷통수를 후려갈기고는 싶은데, 군대 만들 땡전 한 푼도 없으니 돈 좀 빌려 달라 이거군?”

치뜬 눈빛만큼이나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말투. 하르미엔이 좀 전까지 입에 담았던 공치사나 완곡한 어법 따위는 저 멀리 펠레나인 산맥 깊은 골짜기에 생매장 해버리고 온 것 같았다. 하르미엔은 만면 가득 느껴지는 까닭 모를 화끈거림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이자는 무조건 1년에 8할인 건 알고 왔겠지? 담보는?”

세헨데르는 여전히 지루한 듯 건조한, 그러나 일말의 사적인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르미엔은 잠시 마른 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카르에이나의 재건 향후 20년간, 카르에이나 영토 내의 광산 채굴권을 독점할 권한입니다. 수도 칼레인 근교를 비롯한 카르에이나의 옛 영토 지역에는 현재 제국과 일부 가문이 차지하고 있는 대륙의 광맥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풍부한 산출을 자랑하는 금맥과 광맥들이 있지만, 이들은 왕국의 멸망과 함께 마력으로 봉인되어있죠. 봉인을 깰 수 있는 것은 마법사뿐이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국 재건 이후 카르에이나 마법사들의 보조를 받아 그 봉인을 깨고 채굴권과 전매권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면-”

하르미엔은 마치 전날 외운 시를 선생 앞에서 암송하는 학생처럼 채굴 독점에 관해 읊었다. 이에 세헨데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비딱하게 기대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긴 의자 팔걸이에 팔을 괴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손가락 사이에 끼운 파이프를 허공에서 까딱대며 말했다.

“이봐, 아가씨. 담보란 건 말야. 돈을 떼어먹힐 것 같다 싶으면 얼른 뺏어서 도로 팔아 그 돈을 충당할 수 있는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법이야. 지금 당장 네 손에 있지도 않은 걸 걸고 돈 빌려줍쇼, 하는 황당무계한 제안은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알겠어?”
“제국, 아니, 미카룬 대륙과 삼도국(三島國) 모두가 알아주는 타고난 상인 세헨데르 카트치반은 먼 장래를 보고 위험한 투자라도 거침없이 할 줄 아는 대범한 사람이라 들었습니다만…… 역시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인가 보군요?”

하르미엔은 손을 마주 쥐어 무릎에 놓고 꼿꼿하게 등을 편 채 짐짓 도발하듯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세헨데르는 눈을 가늘게 내리뜨며 한쪽 입꼬리로만 피식 웃었다.

“미안하게 됐군- 날 도발하려는 노력은 가상하다만, 난 겨우 그 정도에 넘어가는 성격은 아니라서.”
“예프게젤 시의 보석 대란, 세올란티 시의 금광 개발 열풍, 이오델 시의 직물가 폭등 소동. 이 모든 것의 흐름을 미리 읽어내고 그 기회를 이용해 지금의 자산을 축적한 혜안을 지니신 세헨데르님이라면, 분명 카르에이나 전역의 광산 채굴권과 채굴한 광물의 전매권의 독점이라는 일의 가치를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이 기회를 놓쳐, 후에 독점권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게 될 경우의 막심한 손해에 대해서도요.”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막힘없이 쏟아지는 하르미엔의 단호한 말에, 세헨데르는 테이블에 파이프를 내려놓고 턱을 만지작거렸다. 제법 긴 침묵이 흘렀다. 덕택에 강한 모래 바람이 휘몰아쳐 벽을 치는 소리가 괴괴히 울렸다.

“좋아- 빌려주지.”

한참 만에 입을 연 세헨데르는 반색하듯 고개를 든 하르미엔을 바라보며 그녀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말허리를 잘라냈다.

“단, 조건이 있다. 헬릭스가의 루시아넬 측과 연합군을 맺었다는 증거를 가져올 때 지원해주겠어.”
“그건 불가능합니다……!”

화색이 돌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세헨데르는 짐짓 비딱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여왕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는 상대니까? 연합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원수지간이라?”

하르미엔은 입술을 꾹 다물고 대답이 없었다. 세헨데르는 파이프를 다시 집어 들어 한 모금 빨고 마치 한숨이라도 쉬듯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아지랑이발처럼 희미한 연기가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정신 차려, 이 답답한 아가씨야. 꿀을 미끼로 곰을 유혹하고 싶다면, 일단 벌집부터 짓고 꿀을 만들 일벌들을 불러 모아 꿀부터 만들어내는 게 먼저 아니야? 그 안에서 여왕벌을 정하는 싸움은 나중에 가서 하라고. 누가 벌집도 없는 여왕벌을 따르겠어?”

무정하고 신랄했지만 반박할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솔직히 아가씨가 여왕이 되건 헬릭스가의 그 당돌한 공작 영양(令孃)이 여왕이 되건,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야. 그런데 지금 세력으로는 둘이 제각각 제국에 덤비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치고 그 뒤에 제국과 맞서든 영 미래가 없단 말이야. 왕국 재건은커녕 도리어 전멸이나 안 당하면 신에게 감사할 수준이더군. 그러니 왕국 재건 이후의 채굴권을 담보로 잡고 싶으면, 적어도 왕국을 재건할 수 있는 확률은 최대한 늘려야 하지 않겠어? 물론 아가씨 말마따나 난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도 투자할 줄 아는 인종이지. 하지만 모든 상인들이 그렇듯이, 나도 기왕이면 위험 요소가 적고 수익이 보장되는 쪽을 선호하거든. 내 돈주머니를 열게 하고 싶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않겠어?”

세헨데르의 거침없는 말에 하르미엔은 잠시 고민스러운 듯 침묵을 지키다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만……. 세헨데르님의 의향은 잘 알겠습니다. 제 힘 닿는데까지 설득해보겠습니다.”
“뭐…… 그렇겠지. 좋아. 결정하고 세력을 연합할 시간은 주지. 네 사람들을 잘 설득해봐. 솔직히 나도 역겨운 제국 놈들, 특히 그 잘나신 황태자 얼굴 일그러지는 꼴은 보고 싶거든. 제국 놈들 뒤통수 쳐주는 계획 자체는 쌍수 들고 환영이야.”
“……감사합니다. 그럼, 유예 기간은 언제까지……?”

하르미엔의 말에 세헨데르는 눈을 들어 복잡한 추상 도안이 새겨진 둥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긴 손톰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 액수를 준비하고 제국 쪽의 눈에 띄지 않게 나눠 보내려면 한 달은 걸려. 길어지면 두 달이 될지도……. 아무튼 준비가 되면 심부름꾼을 보내서 알려줄 테니 그동안 두 세력이 연합했다는 증거를 내 눈앞에 가져와.”
“예,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이쪽에서도 준비해주시는 기한 내에 다시 연락드리죠.”

하르미엔은 꾸벅 목례를 하고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벽을 치고 흩어지는 세헨데르의 목소리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세헨데르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정말, 세상 물정이라곤 눈꼽만치도 모르는 아가씨로세. 내 말만 믿고 그냥 가려고? 증인도 없이 한 얘기만 믿고? 사람들 앞에 돈 융통할 데가 있다고 떠벌렸는데 내가 나중에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떼고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어쩔 건데? 그런 망신스런 꼴 당하지 않으려면 차용증서든 뭐든 써달라고 하거나 해야 할 거 아냐?”
“아…….”

지금까지 비교적 침착함과 평정을 유지해온 하르미엔의 얼굴에, 가면이 벗겨지듯 무방비한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다가 마침내 ‘그럼 서류를……’이라며 허둥대는 그녀를 바라보던 세헨데르는 피식 웃고 손을 내저었다.

“됐어. 해 본 소리야. 난 시시한 종이 쪼가리에 쓰인 약속 따위는 믿지 않으니까. 내가 믿는 건 사람을 고르는 내 눈과 감뿐이야.”

그녀의 말에 하르미엔의 얼굴엔 안도의 기색이 돌았다. 그러나 세헨데르는 그녀가 그런 안도감을 미처 다 누리기도 전에 다시 냉담하게 말했다.

“이봐, 하르미엔 A. 카르에이나- 당신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지금의 거래만해도 딱 부러지는 얼굴로 냉철하게 처리하는 척 하지만, 결정적인 것에서 허둥댔잖아? 진심으로 여왕이 되고 싶으면, 한 나라를 책임지는 자리에 앉고 싶으면 좀 더 바짝 정신 차리고 더 배워서 야무지게 굴어. 지금의 너처럼 헛똑똑이가 여왕 되어 헛짓하면 고생으로 죽어나는 건 애꿎은 백성들이야.”

하르미엔은 제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눈만 깜빡였다. 그런 그녀의 길게 내려온 곧고 검은 머리칼을 보던 세헨데르는 몸을 뒤척여 돌아누워 길게 눕고 등을 보이며 툭 내던지듯 말했다.

“용무 끝났으면 가 봐. 뭘 그리 멍청하게 서 있어?”

하르미엔은 노골적으로 무례한 언사에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이내 길게 끌리는 드레스자락을 양 손으로 잡고 허리를 살짝 굽혀 예법에 맞게 정식 인사를 하고 단정한 발걸음으로 길게 드리운 다홍색 휘장을 걷고 방을 나갔다. 세헨데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고 식어가는 파이프에 담뱃잎을 눌러 담고 다시 불을 당기며 중얼거렸다.

“흐응, 듣던 것 보다는 제법이잖아. 최소한 머리 빈 여자는 아니군. 여왕감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새 담뱃잎이 타들어가는 알싸한 냄새를 즐기며 세헨데르는 어렴풋이 입꼬리를 들어올려 웃음 지었다.

“이거, 예상외로 재밌는 일이 되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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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에이나의 재건을 꿈꾸는 무리가 두 파로 나뉘어, 하르미엔과 루시아넬이 후계자-그러니까 신 카르에이나 왕국의 여왕- 자리를 놓고 세력 다툼을 해가던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세헨데르가 루시아넬과의 연합군 형성을 증거로 대라고 조건을 걸게 된 배후에는 루시아넬의 사주가 있었습니다;; 아넬은 지금의 양분된 전세로는 절대 제국에 어떤 타격도 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내키지는 않지만 하르미엔 세력과 연합해 연합군을 일단 이용해 왕국을 재건해놓고 후에 자기가 왕위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미엔 측이 내건 조건보다 더 후한 조건을 미리 내걸었죠. 세헨데르야 당연히 처음엔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고 기가 막혀 했지만 일단은 꽤나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라 루시아넬의 무모한 계획에 일단 찬동했구요. (게다가 카트치반가도 제국과는 겉으로는 지배-복종이지만 사실 악감정이 굉장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도 작용...) 그러니까 사실 돈을 빌려줄까 말까 하며 미엔 앞에서 생각해 보는 척 했던 것도 세헨데르의 연기였습니다. 어차피 이미 아넬과 협약이 되어 있으니 빌려줄거였죠. 그리하여 미엔으로 하여금 먼저 연합 건으로 숙이고 들어오게 만드려는 속셈으로 미리미리 손을 써놓은 겁니다. 아넬링 무서운 아이...! (....)

그리고 쓸데없는 여담이지만 '세헨데르'는 사실 저 지방에서는 남자 이름입니다. 카트치반 공작의 첩인 어머니가 아들이길 바라면서 태어나기도 전에 붙여버린 이름인데, 바람과는 달리 딸이 태어났죠. 그래서 이 언니를 실제로 만나보지 않고 소문만 들은 사람들은 종종 남자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제국 안에서 손꼽히는 부자라는 것도 착각에 한 몫 더하고...) 해서 정상적인 시장에서 활동을 할 경우에는 본명을 쓰고, 뒷골목 암흑 경제에서는 델라 라는 애칭아닌 애칭을 사용합니다. 주로 델라 누님이라고 불리죠.

아이고 하여간 아직도 이야기는 불어만 가고 쓸 능력은 없는건 여전하네요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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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에이나크로니클
# by 묘희猫姬 | 2007/05/20 01:10 | - 단문 24제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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