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상 하로 나누려다가 아무래도 분량이 서로 사맛디아니하여....(그래도 하편이 지나치게 길어지지만) 꼼수 피우다 보니 중편이라는 물건이 나왔네요ㄱ=;
이제야 좀 리다아란 글 같아지는 중편입니다.
「어흥,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테……」
「당장 거기서 내려오지 않으면 베겠습니다.」
높다랗게 솟은 이멘 마하 북지구 망루 난간에 이웨카가 뿌리는 빛의 끝자락이 걸리고, 그 희미한 빛은 서슬 푸르게 뻗어나가 번득이는 칼날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 빛나는 칼날의 끝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곳에는 괴이한 표정의 호박머리가 망루 지붕 끝에 거꾸로 매달려 얼굴을 디밀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듯 팽팽한 긴장 속에 침묵이 흘렀으나, 이내 긴 한숨과 함께 거꾸로 매달려 있던 괴이한 호박 머리가 탁 트인 망루 난간 위 지붕 쪽으로 올라가며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훤칠한 인영(人影) 하나가 바람에 펄럭이는 망토 자락을 잡아 쥐고 망루 안으로 가볍게 훌쩍 뛰어 들어와 볼멘소리로 말했다.
「매정하긴. 할로윈 장난에 정색하고 칼을 들이대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을 걸세, 아란웬.」
그리고 그는 커다란 손을 들어 호박 머리를 쑥 들어 올려 빼고 옆구리에 낀 채 멋대로 헝클어진 머리를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는 동물들처럼 거칠게 흔들어 정리했다. 아란웬은 그 얼굴을 보고 칼끝은 거두어 들였으나 여전히 자못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런 수상쩍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마족이나 침입자로 오인 받는 겁니다. 그나저나 단장님께서 북지구까지 무슨 용무로 오신 겁니까?」
「당연히 사탕 받으러 왔지. 할로윈이니까.」
리다이어는 마치 ‘팔라라는 왜 아침에 뜨고 이웨카는 왜 밤에 뜨나요?’ 라는 질문을 들은 사람마냥, 그런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눈만 끔뻑였다. 그러나 아란웬에게는 그것이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모양인 듯 했다. 그녀는 주변에 싸늘한 얼음 바람이라도 휘몰아칠 것 같이 더욱 싸늘해진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입니다만, 지금 할로윈을 핑계 삼아 기사단 영내에서 단체로 직무도 팽개친 채 벌어지고 있는 해괴하고 유치한 장난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아아, 할로윈 장난말인가? 그거라면 내가 허락했으니 괜찮다네. 모처럼의 축제니까 기사단도 이멘 마하의 시민들과 하나 되어 다 함께 즐기면 좋잖은가.」
그 말에 아란웬은 후읍, 하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망루 안이 쩌렁쩌렁 울려 흔들릴 것만 같은 커다란 노성을 터뜨렸다.
「괜찮긴 뭐가 괜찮고 좋긴 뭐가 좋습니까!!! 기사단 전체가 임무도 잊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꼴이 제대로 된 겁니까!!!」
리다이어는 돌벽에서 반사되어 귓가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움찔 놀라며-누가 기사들을 훈련시키고 통솔하는 대장 아니랄까봐 목청도 좋지-슬쩍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아란웬은 정말로 단단히 화가 난 듯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미간을 더욱 찡그리며 목소리를 한 톤 더 높였다.
「할로윈은 본디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 즉 포워르의 사악한 기운이 한층 강해지는 어둠의 날입니다. 주변의 동향에 눈과 귀를 열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날이지, 한가하게 사탕 장난 따위를 하고 있을 날이 아니란 말입니다! 단장님쯤 되시는 분이라면 그런 분별 정도는 있으실 줄 알았는데, 도리어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해서 장난을 치러 돌아다니시다니 정말 기가 찰 따름입니다!」
노여움에 치민 긴 말을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내뱉은 아란웬은 질렸다는 듯 말없이 리다이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몸을 휙 돌려 벽에 걸린 두터운 망토와 그 옆에 기대어 세워놓았던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망루를 내려가는 문을 부서뜨릴 듯한 기세로 열어 제치고 계단으로 향했다. 리다이어는 불시에 딱딱하고 차갑고 거칠기까지 한 돌벽에 인정사정없이 부딪친 가여운 문짝에게 잠시 애도를 표한 뒤 그녀를 뒤따라갔다.
「어딜 가나?」
「야간 순찰하러 갑니다!」
「북지구에는 지금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는 위험하지 않나?」
좁다랗게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꼬인 긴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던 아란웬은, 뒤따라오는 리다이어의 태연한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관자놀이에 힘줄이 솟으려는 것을 한 손으로 꾹 눌렀다. 그리고 발을 멈추어 휙 돌아서서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그를 노려보며 짜증과 분노로 날이 한껏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지금까지 저 혼자 망루에서 불침번을 서고, 이제는 혼자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 순찰까지 가야 하는 게 다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장님께서 기사들과 수련생들을 부추겨 할로윈이니 뭐니 떠들며 태만하게 만들었기 때문 아닙니까! 단장님께서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으시다면 항의할 말은 없으시겠죠!」
그렇게 다시금 리다이어를 거침없이 몰아붙여 힐난한 그녀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자못 쾅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망루 아래의 작은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리다이어가 몇 번 더 그녀에게 말을 붙이려 불러 보았으나, 아란웬은 아예 더 이상 말해봤자 시간낭비라는 듯이 그를 싹 무시한 채 보통 사람들은 따라가기 조금 벅찰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밟아 내려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망루 근처의 나무에 매어둔 말을 풀어 올라타고 평소의 야간순찰과 다름없이 이멘 마하 외곽으로 향했다. 조금 뒤 망루 계단을 빠져나온 리다이어는 난감하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서서 그녀가 말을 몰고 가는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찼다. 그리고 역시 근처 나무에 잠깐 매어 두었던 자신의 말을 끌고 와 가볍게 올라타,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따라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제법 발이 빠른 준마(駿馬)를 재촉까지 해가며 달린 덕에 리다이어가 아란웬을 따라잡는 데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란웬은 자신의 옆에 다가온 그의 기척에도 잠시 흘끗 바라보기만 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지금껏 가볍게 달려오던 속도를 유지해가며 평소의 순찰 경로 그대로 말을 몰았다.
한 밤의 어둠에 감싸인 이멘 마하 외곽은 고요했다. 평소라면 이따금 밤새들이 가지를 차고 날아오르는 소리, 정체 모를 밤 짐승이 위협적으로 낮게 목을 울리는 소리, 한 순간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 나뭇잎이 부대끼는 소리 등 밤의 숲에서라면 쉬이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번갈아 가며, 또는 동시에 들리곤 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 마저도 들리지 않는 지금은 오로지 다그닥 다그닥 규칙적으로 울리는 말발굽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지면을 차고 올라와 밤의 서늘함 속에 울려 녹아들 뿐 이었다. 그 기이한 정적에 잠시 긴장하고 주변에 귀를 기울이던 리다이어는 주위에 소리가 없는 만큼 별 다른 위협적인 기척도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아란웬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아란웬. 할로윈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니까? 저승에서 올라와 떠도는 유령들이 그런 사람들만을 골라 저승길 친구로 삼는단 말일세.」
처음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던 아란웬은 그가 끈질기게 말을 거는 통에 마지못해 그를 흘끗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여전히 짜증은 가시지 않은 듯 양 미간을 찡그린 채였다.
「……그런 것에 겁먹을 정도였으면 애초에 팔라딘 기사단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농담이 아니라니까? 자네가 아까 할로윈은 포워르들도 더욱 설치는 어둠의 날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디서 포워르가 기습이라도 해오면 어쩔 셈인가?」
「최근의 포워르 동향과 이멘 마하 외곽 근처의 출몰 빈번 지역 정도는 파악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죠. 누구처럼 축제 분위기에 들떠 직무 시간에 놀러 다닐 정도로 나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멘 마하 외곽에서도 바깥 경계에 속하는 깊은 숲 어귀에 들어설 때까지, 한동안 이처럼 리다이어는 갖은 이유를 들어 -개중에서는 스켈레톤이 최근 살이 붙었다며 근심스러워 한다거나 코볼트가 사실 인간 애호가라는 이야기만큼이나 한심한 종류의 것도 있었다- 설득하고 아란웬은 태연하고 무심한, 그리면서도 가시가 돋친 대답으로 받아치며 옥신각신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줄곧 그녀의 곁에서 말을 몰던 리다이어가 말을 멈춰 세우고 등 뒤에서 그녀를 불렀다.
「아란웬, 이봐, 아란웬.」
그러나 아란웬은 그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대꾸도 없이 가던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아란웬.」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과는 명확하게 다른, 다급함이 서려있는 낮은 목소리였으나 아란웬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말의 귓등과 갈기,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땅에 적당히 시선을 두며 한숨과 짜증을 반반쯤 섞어 답했다.
「이름 닳겠습니다. 적당히 하세요.」
「그게 아냐. 멈춰.」
「방해만 하실 거면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멈추라니까! 상관(上官)의 명령이다! 멈춰!」
낮고 강하게 울리는 리다이어의 말에 아란웬은 자기도 모르게 말고삐를 잡아당겨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투레질하는 말을 달래 말머리를 조금 돌려 뒤를 바라보자, 그녀 어깨 너머 위의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다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발걸음을 멈춘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뒤로 보이는 숲의 어둠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흉하게 찢긴 장막처럼 넘실대며 덮쳐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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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뭘까~요? (포X몬 나레이션 풍으로 읽어주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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