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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이니까요. 뭘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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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면서 이게 호랑이귀..
by 묘희 at 01/02
...역시 제너럴. 잘 ..
by AilinLusse at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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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Round and Round~ver. Bow~
이번에는 활돌이 버전입니다. 얘기는 둔남이 버전과 별 다를 것은 없습니다만, 표현 방식이나 글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깁니다. 스크롤 압박 주의보를 미리 발령해두겠습니다.

*10/12 추가. 마비노기 공식 카페 9월 4/5주차 인기상에 선정되었습니다 :3
*10/19 추가. 마비노기 소설 게시판 9월 월간 인기상에 선정..... (어째서 Blunt가 아니라 Bow? ;ㅁ;)

아, 제길.
이런 순간에 생각나는 것은 역시 최초의 기억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도.



오감과 말초신경을 넘어, 중추신경까지 타고 흘러들어가 자의식마저 몽롱하게 마비시켜버릴 것 같은 단단하고 어두운 세계. 정령석의 내부, 그리고 그 내부에 잠들어 경화되어가는 시간의 흐름.

이전의 기억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마구 뭉개어놓은 듯 희미하게 어그러져서, 아무리 손을 휘저어 봐도 떠오르는 실체는 없다.
참으로 뭣한 기분. 몇 번쯤인가 시도해보다가 이내 무언가 기억의 끄트머리를 잡아 당겨보려는 노력 따위는 포기하게 된다. 그저 미칠 것 같은 침묵 속에서 모든 감각의 촉각을 불씨 끄듯 짓눌러 꺼버리고 포기하듯 연명해나갈 뿐.


그 답답하기 짝이 없는 시공을 깬 것은, 눈이 아릴 정도로 새하얀 한 줄기의 빛.




끊임없이 그대를 수호할 빛의 가호가
팔라라와 이웨카,
비와 대지,
정령과 신의 이름으로
함께 하리라.......






빛과 함께 차분하게 주문을 읊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시공을 깨어들며 차가운 공기가 밀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딱딱하게 굳어 돌처럼 무겁던 날개가 풀렸다.
카랑, 금속성의 소리가 날것만 같은 등 뒤의 날개가 눈송이 휘날리는 잿빛 하늘로 뻗어갔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찢을 듯이 날카롭고 차갑게 빛나는 공기가 들이닥쳤다. 온 몸이 오싹해지는 청량감. 문득 둘러보니 새카만 가죽을 덧댄 레더 롱보우를 들고 있는 검고 긴 생머리의 여자아이가 보인다. 흐응, 계약자가 저 꼬마인가?

“안녕! 처음 보는군? 나는 위대하신 활의 정령님이지! 훗훗, 수많은 정령 중에 날 모시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구!”

나의 말에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는 무심한 눈으로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옆에 서 있던 갈색 로브의 드루이드에게 말했다.

“타르라크씨. 저는 활의 정령과 계약하고 싶다고 했지, 같잖은 허영에 헛소리를 얹어 말하는 바보랑 계약하고 싶다고 한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요?”

“뭐야! 누가 바보라고!”

나는 발끈하여 소리쳤다. 그러나 검은 머리의 여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그저 그 작은 입으로 한숨을 폭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할 뿐이었다.

“정말이지 시끄러운 녀석이네. 너, 알아둬. 난 네 주인 하르미엔이고, 난 시끄러운 게 싫어. 그러니까 나와 조용히 잘 지내고 싶으면 나불랭이가 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이.......땅꼬마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나는 왠지 관자놀이에 뿌득, 힘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를 벅벅 갈았다. 저런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꼬맹이랑 앞으로 같이 다녀야 한다는 건가? 아아 제길, 정령 팔자 한 번 사납네.

내가 가당찮은 모욕에 치를 떠는 동안 꼬마는 희미하게 하얀 빛이 감도는 나의 본체, 검은색의 레더 롱보우를 등에 둘러메었다. 그리고 저벅저벅 눈 쌓인 언덕길을 내려가며 말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카이아스야. 아무리 엘리멘탈 리무버를 잔뜩 먹고 머릿속이 하얗다고 해도 그것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겠지?”

“이이이이이이익! 멍청이가 아니래도!”






나는 여기까지 돌이켜 생각해 내고 피식 웃었다.
그래, 그게 나와 너의 첫 대화였지.
그 대화의 의미 따윈, 오늘까지 알지 못한 채 지내버렸지만.




기억은 기억을 부른다.
미친 파도처럼 기억의 흐름이 의식을 엄습해온다.
또 어느 날인가의 기억이.



“이봐 미-엔! 배-고-파! 밥 줘! 아이템이 필요하다구, 아이템이!”

“시끄러, 식충이.”

사람들이 북적대는 던바튼 광장을 걸어가면서 하르미엔은 나의 정당하고 당연한 권리의 행사를 한마디로 일갈해버렸다. 덕택에 나는 쪼르륵 소리를 내며 철썩 달라붙어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뱃가죽과 등가죽을 부여잡고 그녀의 뒤를 씩씩대며 따라갔다.

“넌 정령 주인으로서 자격 미달이야! 주인이라면 매끼 꼬박꼬박 흡수할 좋은 아이템을 주고 정령의 능력치를 성장시켜줘야 하는 법인데! 그래야 정령들도 주인을 돕지!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라고! 공짜가 어딨어!”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나의 말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관청의 에반에게 마족 스크롤의 수효를 세어 건네주었다. 그리고 에반이 건네주는 금화 주머니를 받아들고 식료품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악악! 치사해! 혼자 먹을 거 사먹고 두둑하게 부른 배를 두드릴 생각인거지? 나는 인간의 음식 따위는 못 먹는단 말이야! 정령이 이렇게 배가 고파하는데 주인 혼자 맛있는 거 먹을 생각이 들어? 이 매정하기 짝이 없는 주인같으니라고!”

나는 하르미엔의 주위를 빙글빙글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면서 외쳐댔지만 그녀는 그저 귀찮다는 얼굴로 한번 힐끗 나를 돌아보고는 식료품점의 글리니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빵과 딸기, 치즈를 좀 사려고 하는데요.”

“아이구, 어서오시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여행자인가보우? 요즘엔 유난히 모험가들이 많던데, 아가씨도 그러우?”

나는 글리니스의 말에 지독한 위화감을 느끼며 흠칫 놀라 하르미엔의 눈앞 허공에 흔들어대던 손을 멈췄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미엔은 언제나 던바튼 식료품점에서 먹을 걸 샀다고! ‘딸기와 빵을 함께 파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라면서!

그러나 하르미엔은 나의 이런 경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희미하게 웃으며 ‘뭐, 나름대로는 모험가지요.’ 라며 주머니를 뒤져 금화를 내고 갈색 봉지에 담긴 음식들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잘 가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글리니스를 뒤로 하고 던바튼 서쪽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배가 고프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따지듯 물었다.

“뭐야? 글리니스가 어째서 널 모른다고 하는 거야? 넌 이 식당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고! 며칠 전에도 친근하게 인사하고 이름까지 불러가며 덤까지 줬던 걸 난 기억한다고!”

“여긴 원래 이런 곳이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령인 너는 모르겠지만.”

“뭐?”

태연하다 못해 무심한 하르미엔의 말에 나는 그저 벙찐 채 입을 벌리고 짧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하르미엔은 문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밀레시안. 별에서 온 사람들이야. 이 곳 에린의 원래 주민들과는 다른 존재지. 우리들은 한 계절이 지나면 그들로부터 잊혀져.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도 잊혀질 수 있지. 아무리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지냈어도 소용없어. 잊혀지는 거야, 그냥.”

팔라라가 이웨카에게 자리를 내주기 직전에 마지막 힘을 다해 흩뿌리는 붉은 빛에 비치는 하르미엔의 옆모습은 여전히 덤덤했다.

“그 순간에 깨닫는 거지. 여긴 내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있어도 확실하게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뭐, 이제는 익숙해졌어. 언제나 그런 식이니까, 에린은.”

거짓말. 익숙할 리가 없잖아. 그따위 일에. 누구와도 같은 세계에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세계에 내던져 나동그라지고 있는 일 따위에는 평생가도 익숙해질 리가 없어. 나는 인간은 아니지만 그것만은 알 수 있어.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는 잘근잘근 이런 말을 씹다가 입을 열어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

“이봐, 미엔, 옆에 있는 정령을 잊으면 섭하지- 적어도 지금 너랑 나랑은 나란히 있고, 나는 저 에린의 주민들처럼 주기적 건망증에 걸린 것도 아니야! 내 본체가 부서지거나, 네가 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이상, 나는 나의 악독한 주인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고! 나름대로 확실한 세계 아냐?”

하르미엔은 나의 말을 듣고 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저 표정을.
윽,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부담스러워, 주인. 아 씨,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헛소릴 했나. 나는 괜히 애꿎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윽고 하르미엔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어쩐지 얼핏 그 돌아서는 옆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이 걸려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돈 써가며 아이템 먹인 보람이 있네? 그런 영양가 있는 얘기도 할 줄 알고. 평생 가도 바보일 줄 알았더니.”

“이이익, 좀 비싼 거나 줘 보고 그런 소리를 해! 지금까지 초저가 아이템 위주의 절약형 식단으로 이만큼까지 커 온 네 정령이 불쌍하지도 않아?”

“저언-혀.”

“야, 이, 악덕 주인아, 먹는 것 가지고 공갈 협박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야!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밥 줘!”

나는 다시 빽 소리쳤고, 하르미엔은 그런 나를 무시하고 어느새 이웨카의 힘을 받아 두둥실 떠오른 문게이트의 거대한 스톤 아래로 총총 걸어갔다.




그래, 그런 이야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여기에 이렇게 함께 있는데, 어째서 나는 지금을 확실한 둘의 세계라고 느끼지 못하는 거지?
응? 대답해봐.


끝없이 눈이 내린다. 그 눈송이가 흩날려 황금색으로 빛나는 활을 꾹 쥐고 있는 하르미엔의 손에 내려앉자, 금세 한 방울의 물로 화한다.
그 물방울 속에서 또 다시 스쳐가는, 비 냄새가 진동하는 기억의 한 페이지.






“아, 이런. 비다.”

먹장구름이 드글드글 몰려와 서로 어깨를 부대끼고 있는 폼이 심상치 않더라니, 역시 굵은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황급히 지붕이 있는 곳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하르미엔 역시 미간을 약간 찡그리더니 던바튼 관청 앞의 계단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오늘은 모험가 조합의 휴일인지, 언제나 밖에 나와 있던 에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미엔 곁에 다가가 털퍽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봐, 미엔. 물어볼 게 있는데.”

가방을 뒤져 먹을 것을 찾던 하르미엔은 나의 질문에 그저 무심히 녹색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뭔데.’라고 말했다.

“‘슬프다’는 게 정확히 뭐야? 지금까지 너랑 여행 다니면서-네가 말하길-슬퍼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와 닿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서.”

하르미엔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상하게 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같이 우울해져버릴 것 같았다.
뭐야, 왜 질문 하나에 그런 표정을 하고 그래. 평소처럼 톡 쏘면서 면박이나 주라고. 그 편이 더 너답잖아.

“.......비가 내리는 거야. 마음 속 깊은 곳에, 아주 아프게. 때로는 눈에도, 눈물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하르미엔은 가방에서 꺼낸 조금 덜 익은 나무열매를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나는 주인의 뜬금없는 말에 잠시 비가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비가 내리지. 주위는 축축하게 습한 공기로 가득 차고, 하늘은 우중충 꾸물럭 거리고, 낮은 구름이 다글다글. 흐음, 그런데 아픈 거랑 무슨 관계지?

“거 한낮의 이웨카 잡는 선문답 같은 얘기보다는 인간 아닌 존재도 이해하기 쉬운 정확하고 친절한 주석이 달린 설명을 좀 부탁하는 바인데?”

“이해 못하면 관둬. 뭐 어차피 바보에겐 설명해도 소용없는 얘기지.”

“......자꾸 바보 바보 할래? 자꾸 그러면 나도 밥상 뒤엎을 거다?”

하르미엔은 흘끔 나를 쳐다보더니 피식, 김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뒤엎을 줄은 알아? 바보들이 흔히 하는 짓 중에 하나가 밥상 뒤엎으려고 없는 밥상 차리는 건데, 그러지는 말아라. 재료 아까워.”

“크으으으으으윽, 끝까지 바보 취급 하겠다 이거지.......”




그래, 이 날도 사실은 별 것 없는 날이었어. 너와 내가 함께 지낸 그 수많은 날 들 중의 하나.
네가 슬픔에 대해 말했을 때의 그 표정만 아니었어도 이런 날은 기억나지도 않았을 거야.


나는 툴툴대고, 주인은 무시하고.
나는 물어보고, 주인은 면박 주며 대답하고.
언제나 주거니 받거니 설전이 오가고.
그러면서도 주인은 나를 챙기고, 나는 그녀를 위해 싸우고.
함께 있고, 함께 걷고.
그런 날들.





「이봐, 미엔. 시드스넷타에는 갑자기 왜 가는 거야? 사냥할만한 것도 없잖아?」

「.......」

그녀의 침묵에 빌어먹게도 잘 들어맞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결코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입에 담아 질문으로 만들어 내뱉었다. 젠장, 젠장.

「계약의 해지?」

여전히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들어올려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올리며, 괜히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괜찮아. 뭐 그런 얼굴을 하고 그래?
너와 나는 계약으로 묶인 몸. 그 계약을 해지하는 것뿐이야.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야.
쿨하게, 깔끔하게 헤어지자구.」



그래, 시드스넷타의 초입에서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떨리는 손으로 활을 쥐고 있던 주인에게 그런 헛소리를 지껄였었드랬다. 괜히 과장되게 웃어 보이며.



.......하하, 그런데 이걸 어쩌냐, 주인.
당신의 바보 정령은 당신이 비가 오는 날 기묘한 표정으로 말한 그 얘기를 이제야 이해해버리고 말았어.
별 것 아닌 일인데, 정말로 별 것 아닌데, 심장이 아프다. 주인 네가 단검으로 푹푹 찌르고 있는 거냐? 넌 저기 멀리 떨어져서 갈색 로브의 드루이드 옆에 서 있으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요상하네.


비가 내린다.
눈이 시리게 아픈 하얀 빛으로 덮인 숲 위로 비가 내린다.
새하얀 나무들이 어디까지고 이어지는 이 곳에 넘쳐흐르고 있어. 마치 눈물과도 같은 것이.
아니, 아니다. 영원한 눈의 세계인 시드스넷타에 비 따위가 내릴 리가 없지.


제기랄, 이게, 이게....... 슬픔이란 거냐. 슬프다는 기분인거냐.




“정말로, 정령과의 계약을 파기하시겠습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말하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하르미엔.


이봐, 미엔.
이 몸에 지금의 장식과도 같은 날개가 아니라, 진짜로 살아 퍼덕여 마음대로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면,
대지를 확실하게 딛고 걸어갈 수 있는 다리가 있다면,
하다못해 알량한 활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올라탈 수 있다면.

이번만은, 이번만은 그렇게 생각해봤어.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나뿐인가?
응? 대답해봐, 미엔.



모든 것이 멀어진다.
시드스넷타의 밤하늘에 흩날리는 눈송이도,
착잡한 얼굴의 드루이드도,
그저 차곡차곡 쌓여가는 밭 밑의 눈밭에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주인도.
얼핏 그 떨군 고개에서 레더 롱보우의 까만 가죽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 것은 내 착각일까?

희미해지고, 흐려지고, 희석되어 점점 멀어진다.

단 하나, 가슴의 이 빌어먹을 통증만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단 한 마디, ‘젠장, 이런 게 슬픔인거냐’ 라는 나 자신의 소리없는 절규만이 반향이 되어 돌아오면서.






다시 어둡고 견고한, ‘되먹지 못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픈 세계에 틀어박혔다. 얼마나 있던 것일까, 여기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초적인 감각마저 무디어져 석화되고 내 자의식은 반쯤 허물어져가고 있을 때, 새하얀 빛이 보였다.



끊임없이 그대를 수호할 빛의 가호가
팔라라와 이웨카,
비와 대지,
정령과 신의 이름으로
함께 하리라.......





모든 것이 반복된다.
돌고 돌아서, 세계의 끝에서 다시 시작된다.
언제나 반복되는, 끝나도 끝나지 않는 순환의 고리.

빛이 나를 감싼다.
마치 꿈을 내어주는 등불처럼.
나는 또 다시 그 등불에 의지하여 인간에게 말을 건넨다.


“요옵! 나는 위대하신 보우의 정령! 날 모시게 된 걸 영광으로 알고, 앞으로 잘 부탁하지!”

뭔가 아니다.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렸어. 뭐였지?
아무리 애써 되돌이켜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에이, 모르겠다. 그만 두자. 괜히 머리만 아파지는군.

그래서 그저 나는 하얀 빛을 발하는 활을 들고 내 앞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 있는 붉은 머리의 꼬마를 바라보며, 아주 익숙한 것 같은 느낌의 말을 다시 꺼낸다.

“참, 네 이름이 뭐라고, 꼬마 주인?”






---------------------------------------------------
하루만에 또 썼습니다; 정령물이 어지간히 쓰고싶었나봅니다.
사실 제가 활돌이는 데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 등장시의 대사가 정확히 저 대사인지는 모르겠어요. 일상에서의 말투도 그렇구요. 그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스샷의 대사와 활돌이 자체의 이미지만 가지고 썼습니다.
이번에도 이름들은 자캐들입니다 =ㅅ=;;;;; 이름 짓기 너무너무너무 귀찮았어요 (퍽퍽)
처음부터 욕이 튀어나오는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__);;; 하지만 활돌이라면 저정도의 가벼운 육두문자쯤은 써 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슬픔이라는, 참으로 괴로운 것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활돌이라면요.
활돌이는 둔돌이보다 쨍알쨍알 말이 많기 때문에 ver. Blunt보다 더 길어진 것 같아요;;; 여기까지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 by 묘희猫姬 | 2005/09/12 22:12 | 망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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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5/09/13 16: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묘희猫姬 at 2005/09/13 17:12
비공개님//사실 NPC들이 매번 잊어버리는 것 보고서 예상은 했었어요. 덕택에 미리니름을 봐도 별로 충격적이진 않더군요 ^^;;
물론 정령 역시 그 속에서 그런 존재입니다만... 그래서 오히려 저는 정령을 유지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무한 반복되는 숨막히는 시간들을 또 겪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라는 주인의 심정이랄까요...
무한히 많은 기억이 있었고, 또 반복하여 잊고 내게 온 존재라 해도 분명 지금 이 순간은 함께 있는거니까요. 그건 분명히 다른 기억과는 환치될 수 없는 의미를 나름대로 가지는 기억일테니.
음 말이 좀 횡설수설하군요 -_-;;; 요점은 '저는 정령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어떠실지는 모르겠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과 결정의 문제라서요;
Commented by Yuel at 2005/09/16 20:49
활돌이는 솔직하지 못 해;ㅅ; 시드스넷타 갈 때 그게 뭐야;ㅁ;
Commented by 묘희猫姬 at 2005/09/16 22:45
유엘로// 괜히 센 척 솔직하지 못하게 따박 따박 튕기는게 활돌이인게지 흐흐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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