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것에서 좀 잘라내서 새로 쓴 분량이랑 같이 합쳤습니다. 이렇게 나누는 편이 더 나을 듯 하야....
암만봐도 이게 '딴짓'이라서 그간 엄청 달렸던 것 같네요 ㄱ-;; 물론 이런 만담쌈박질(?)을 좋아하는지라 쓰는 게 꽤 재밌어서이기도 했지만요.
새벽 내내 갖은 수를 써서 머리를 비우고 잠들어보려 애썼으나, 그럴수록 정신은 도리어 또렷해지면서 뒤에 들러붙은 녀석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와 바싹 닿은 살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였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 의식을 반쯤 걸쳐놓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가물대는 의식으로 헛것에 가까운 꿈에 시달리며 꾸벅꾸벅 졸기만 했으니, 이래서야 자도 잔 게 아니다.
그러는 사이 슬금슬금 쏟은 물이 번지듯 방 안으로 아침 빛이 새들어 오더니 결국 동이 텄다. 중력에 순응하려는 눈꺼풀을 어거지로 밀어올리며 일어나면서 시계를 보니, 핸드폰 알람을 맞춰놨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알람을 듣고도 못 깨다니, 정말 인생 초유의 사태다.
덕택에 열통이 터져, 내 몸 위로 처덕처덕 둘러진 녀석의 팔다리를 힘껏 잡아 뜯어 뒤로 내던지고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그 결에 잠이 깼는지 녀석이 부시시한 얼굴로 상체를 일으킨다. 마음이 급해 옷을 잡아뽑듯 갈아입으며 참 일찍도 일어난다고 비아냥대니, 자기는 주 4파라서 오늘 수업 없댄다. 그리고선 입 찢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역까지 가는 길 알지? 잘 가라. 난 더 잘란다.'라면서 도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야 이 망할 자식아, 확 사시 십수나 해버려라! 하고 소리치고 걸지게 패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입싼 저주를 퍼붓기는 찜찜해서 녀석의 등짝을 걷어차주는 걸로 만족하고 나와야 했다.
그 뒤는 뻔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간 컴퓨터실에서는 결국 레포트는 쓰다 말고 그대로 엎어져 잠들어 버렸고, 덕택에 쪼잔하게 지각 체크까지 다 하는 첫 수업에 장렬히 늦어버렸다. 그 뒤로 이어지는 다른 수업 시간에도 졸다가 교수한테 찍히고, 또 그 뒤의 수업에서는 졸다가 책상에 머리를 요란맞게 찧어서 온 몸 바쳐 강의실에 웃음을 선사한 꼴이 되었다. 제기랄.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제공한 애증의 레포트도 결국 간신히 분량만 맞춰 마감 한 시간 전에 허겁지겁 제출했다. 당연히 내용은 함량 미달. 아무리 내가 미신을 배격하는 기독교 신자라지만, 이건 정말 마가 끼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연이어 꼬인 일만 일어난 탓에 짜증이 북북 치밀어, 빌린 책은 그대로 방 구석에 처박아 버렸다. 돌려주러 가기는 커녕 연락도 하지 않았다. 뭐, 사소한 복수다. 놈네 학교 학부생은 대출기간 10일에, 연체시 페널티로 연체 일수 만큼 대출 정지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한동안 이대로 먹고 오리발 내밀어야지.
문득 녀석이 얼핏 지성은 날려먹고 야성만 남긴 것 같아 보여도 의외로 책 읽는 거 좋아하던데, 대출 정지 먹으면 좀 곤란하려나? 잠시 마음 한 구석이 콕콕 쑤시는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이내 콧방귀를 뀌며 날려버렸다. 오히려 모 대학처럼 연체료 방식이 아니라서 녀석에게 피부로 와 닿는 타격을 줄 수 없는 점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까지 하며.
"야, 이....... 미친 새끼야!! 누구 앞 길 막으려고 이 지랄이야?!"
"그러길래 누가 문자랑 전화 다 씹으랬냐."
사돈의 팔촌의 이모의 고모의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 마냥 덤덤한 얼굴로 팔짱을 낀 녀석의 얼굴에 더 열통이 터져 와락 멱살을 쥐고 머리 끝까지 열이 올라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불과 몇 분 전 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강의실에 풍지평파를 일으키고, 노발대발하는 교수님에게 쫓겨나다시피 강의실에서 뛰쳐 나와 이 놈과 멱살을 붙들고 마주하고 있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과열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말이 나오지 않아 부득부득 잇소리만 내고 있다.
아, 그래, 내가 이런 꼴에 처한 건 분명히 어느 정도는 내 탓이다.
책을 빌려온 지 일주일이 좀 넘게 지나자 녀석에게서 띄엄띄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책 아직도 필요하냐? 일단 10일 연장해놓을 테니까 다 쓰면 갖다줘라.' ' '내일까지 반납하라고 도서관서 독촉 문자 왔다. 언능 갖다줘라.' '야 임마 내 책도 아니고 도서관 책 먹어서 어쩌겠다는 거냐?' 등등. 물론 1 바이트 짜리 답장조차도 안해주며 무시했다.
점점 격해지는 반응을 보며, 저 너머에서 울그락한 얼굴로 담배를 꼬나물고 키패드를 꾹꾹 눌러 문자 찍고 있을 녀석을 상상하니 퍽 유쾌했다. 새키 지금쯤 똥줄 타겠지, 하고 핸드폰 액정에 찍힌 부재중 수신 번호를 보며 혼자 킬킬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슬슬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나 해 볼까, 하던 딱 그 타이밍에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나도 생각이 있다.' 라는 최후통첩성 문자를 받고서는 머릿 속 핏기가 사악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아차, 장난도 정도껏 쳤어야 했는데, 싶어 덜컹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 놈 화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놈인데.
슬금슬금 밀려드는 불안감에 혼자 머리 싸쥐고 구르다가 택배로 슬쩍 보낼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지만, 녀석의 자취집 주소까지 내가 알 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먼저 연락하고 책을 돌려주러 가는 건 그야말로 호랑이 굴에 뛰어 들어가 잠 자는 호랑이 콧등에 어퍼컷을 날리고 그 콧털을 세 다스 뽑는 것과 맞먹는 짓이다.
결국 요 사이 몇 일 동안 전전긍긍하며 핸드폰을 끼고 살았지만, 지금까지 녀석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 좀 사람 짜증나게 하는 장난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게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300명 앞에서, 한창 진지한 강의 시간에, 당당히 앞 문을 열고 들어와 수염 숭숭 난 허우대 멀쩡한 남자한테 다짜고짜 멱살 잡혀 딥키스당하는 미친 꼬라지에 처해야 할 정도로 악질적이진 않았다고!
"어쨌거나 나랑 얘기 좀 하실까?"
녀석이 시익 웃었다. 지나가다가 한 번 쯤 뒤돌아볼 만한 호남형 미소였다. 그러나 녀석의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울고 싶은 기분이다. 누가 제발 좀, 지금 이 상황이 농담이라고 말해줘.
눈 뜨고 일어나서 '아아, 악몽이었어, 꿈이라 다행이다' 라고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허벅지를 꼬집는 고전적인 수법으로 감정한 결과 안타깝게도 지금 이 상황은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녀석의 손에 손목을 잡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질질 끌려와 호프집에 마주 앉았다. 잠깐 저항해보려고 했지만, 녀석의 덩치에서 나오는 무시 못 할 완력과 스스로 찔리는 구석과 이대로 도망치면 정말 신촌 굴다리 밑에 소리소문 없이 묻힐 것 같다는 위기감이 합쳐져 제대로 된 반항도 못했다.
녀석은 말없이 커다란 생맥주 잔을 세 잔째 연거푸 비워갔다. 나는 녀석을 흘끗거리며 잔에 입을 댔다 떼었다 했다.
남들이 보면 참 조용하고 모범적인 음주 자태라 칭찬할 지도 모르겠으나, 실상은 한 바탕 휘몰아칠 폭풍 전야의 고요일 뿐임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저 두렵기만 하다. 밥상 와장창 뒤집어 엎기 전에 밥과 반찬을 지어 조분조분 차려놓는 행태라고나 할까.
갑자기 쾅, 하는 소리를 내며 육중한 생맥주 잔을 테이블에 꽂아내렸다. 테이블을 부술 기세로 내리친 바람에 저 건너편 바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들까지도 움찔 놀라며 돌아볼 정도였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나 역시 예외는 아니라, 하마터면 앉은 자리에서 튀어나갈 뻔한 걸 좌석 시트를 눌러 잡으며 간신히 참았다.
다시 피쳐를 들어 메다 꽂다시피 내려놓은 잔을 채우며, 녀석은 눈을 부라리고 금수마냥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아니다, 으르렁거렸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너 뭐야."
".....뭐가."
나는 짐짓 태연스레 대꾸했으나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옛 말 틀린 데 하나 없어서인지, 대꾸하는 내 목소리는 영 뻔뻔함과 당당함이 부족하다.
"지금 그게 남의 물건을 거진 2주 동안 삼키고 전화 씹고 문자 씹어가며 입 닦은 무개념이 할 말이라고 생각하냐? 엉?"
"그..... 나도 이제 돌려주려고 했는데 다짜고짜 쳐들어 온 거잖아! 그리고, 솔직히 너 한 짓을 생각하면 이 정도 장난은 약과 아냐?"
'내가 뭘 어쨌는데?' 라고 묻는 녀석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왠지 콩알만큼 자신감이 붙어 목청을 좀 높였다.
"네 녀석이 밤에 이....이상한 짓 하는 바람에 그런 거잖아! 것땜에 잠도 한 숨 못 자고! 잠 고문하냐?"
그 말에 녀석의 얼굴이 한층 험악해졌다.
"......그러니까, 겨우 잠 몇 시간 못 잤단 이유로 지금껏 사람을 그렇게 갖고 놀았다 이거지?"
"겨어우? 다음 날 죽을 맛이었다고! 아니, 그것보다, 강의실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그 지랄 떨고! 나보고 이제 그 수업 어떻게 들어가라고!"
"그으래? 그런 거였단 말이지?"
다시 화제를 강의실 사건으로 돌려 녀석에게 공세를 퍼부으려 했으나, 녀석은 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점점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녀석은 탁자 가장자리에 양 손을 짚고 후욱, 숨을 들이켰다. 두툼한 가슴팍이 들숨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이 녀석 설마 여기서 야만스럽게 분노의 포효질이라도 할 셈인가?
그러나 예상외로 녀석은 들이켰던 큰 숨을 짓씹듯 나눠 뱉어내며 관자놀이를 엄지와 중지로 꾸욱 누르기만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녀석은 뭔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만 못 잔 줄 아냐, 새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녀석의 말에 내 청력 상태를 의심하며 눈만 끔뻑였다. 어? 뭐라고?
그러나 녀석은 다시 얼굴을 알루미늄 캔 마냥 잔뜩 우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망할, 나도 그 날 한 잠도 못잤다고. "
이게 웬 뻘 소리래?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목청을 높였다.
"못 자긴 개뿔? 좀만 더 푹 잤다간 코도 골겠더만?"
"당연히 자는 척 한 거지!"
"척을 하긴 왜 해?"
"너 같으면 내 입장에서 잠이 오겠냐?"
"네 입장이 뭔데?"
"아 씹,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 등신아?"
"뭐 등신? 너야말로 왜 말도 안 되는 걸로 시비질이야 시비질은!!"
서로 한 치도 안 지려고 씩씩거리며 목에 핏대를 올리다가 목이 아파져 입을 다물었다. 숨도 제대로 안 쉬고 맞받아치느라 머리가 다 띵해져서 앞에 놓인 냉수를 들이켰다. 녀석은 주제에 뭐가 그리 갑갑한지 짜증스런 얼굴로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그리고선 우악스럽게 자기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대로 불을 붙이려다가 다시 신경질적으로 물고 있던 걸 빼어 옆으로 치워버리고 입을 열었다.
"너, 인간적으로 말이다, 내가 몇 년을 이러고 있으면 좀 알아채야 하지 않냐?"
"니놈이 뭘 어쨌다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야야, 입에 까치가 둥지 틀겠다. 다물어라 좀.
녀석은 힘줄이 튀어나올 듯 꿈틀대는 관자놀이를 꾸욱 눌러가며 나를 노려보았다.
"넌 내가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한테 손 잡으려고 하고, 껴안으려 하고, 키스하는 발정난 놈으로 보이냐?"
"......아니었어?"
멀뚱히 되묻자 녀석은 머리를 쥐어싸고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다. 그리고 이젠 숫제 인간의 말이 아니라 애니멀 사운드를 내고 있다. 나는 그런 녀석의 윽박지름 공세에서 잠시 벗어난 틈을 타 지금까지 들은 얘기를 되씹어 보았다. 그러니까, 저 놈은 지금 자기가 몇 년 동안 눈치 준 걸 내가 못 알아들어 먹었다고 저러고 있는 거지? 근데 괜히 들러붙는 걸로 눈치 줄 만한 종목이 뭐 있기는 한 건가?
문득 고등학교 동창들 여럿 모인 자리에서 - 물론 '그 놈은 괜히 찝적찝적 아무한테나 들러붙는 게 문제라니까' 라고 평했을 때 놈을 아는 녀석들이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들 '에이, 걔가 무슨...... 그런 성격이 아니구만.' 하며 도무지 믿지 않았다. 대체 왜 믿지를 않는지 의아했지만 이후 물에 물 탄 듯 화제가 다른 쪽으로 넘어가서 나도 그대로 잊어 버렸던 것 같다.
......그게 저 녀석이 나한테만 그런 짓을 한 거라서 그랬던 건가? 그러면 이해가 가긴 한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설마......?
사고가 거기까지 미친 순간, 녀석이 머리를 감싸쥐고 웅크린 채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날아와 박혔다.
"니미, 내가 왜 이런 둔한 자식한테 홀려가지고선......"
넓적두툼한 누군가의 손바닥에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네~ 당첨입니다~' 하며 때릉때릉 종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아하, 세간에서 이런 걸 두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는 거구나.
그리고 속담의 적절성에 대한 절절한 깨달음을 획득함과 동시에, 전신의 피가 활활 타오르며 역류하듯 목에서 머리 끝까지 불을 놓으며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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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딴짓 그만하고 원고해야죠..... 마침 상황도 원고하라고 등 떠미는 것 처럼 되어 버렸고.
사이드도 하나 써 둔 게 있는데 그건 나중에 이 글 전체가 끝나면 올려보든지 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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